설득으로서의 추천
예전에 한 영화 서비스에서 개인화된 추천을 받기 위해 좋았던 영화를 100개 정도 입력한 적이 있다. 그리고 추천받은 영화는 바로… 로보캅, 1987년 작이었다. 평가가 좋은 영화이니 아마 나도 만족했을 것이다. 그 영화를 봤다면 말이다. 하지만 딱히 고전을 좋아하지도 않는 나로서는 그 영화의 플레이 버튼에 끝내 손이 가지 않았다.
평소라면 시도하지 않았을 아이템이지만 시도해보는 때도 있다. 나를 잘 아는, 내가 신뢰하는 사람이 뭔가를 추천해주는 경우다. 이때는 심지어 보고 난 후에 만족스럽지 않으면, 내가 뭔가를 놓쳤나 라고 스스로를 의심하기도 한다. 물론 정말로 신뢰하는 사람의 추천 한정이지만, 이때 추천이라는 행위는 나의 만족도를 그저 예측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시도할 가능성을 높이고 사후 평가에까지 영향을 준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일종의 “설득”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로보캅도 그런 사람이 옆에서 봐야 할 이유를 침을 튀겨가며 역설했다면 플레이시켰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쓰는 추천 서비스 중에서 식당이나 영화는 그다지 만족도가 높지 않다. 반면에 인터넷 서점의 책 추천 서비스는 애용한다. 거기에는 유명인이나 권위자의 짧은 추천사가 한몫한다. 추천 알고리즘을 대신해 그들이 책의 의미와 가치를 설명하고 일종의 보증을 해주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알고리즘과 추천사는 별개지만, 추천 결과의 탐색 여정에 하나의 경험으로 녹아 있다.)
이제 내비게이션은 추천 경로가 의심스러워도 ‘지금 길이 막히나? 뭔가 이유가 있겠지’ 하면서 믿고 따라가는 단계에 접어들지 않았나 싶다. (방향치인 나만 그런가?) 취향 기반의 추천은 아직 그 정도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고 보는데, 내가 그 아이템을 좋아할 거라고 판단한 이유를 보다 투명하고 적극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신뢰도와 설득력을 높일 수 있지 않을까? 별점 리뷰나 ‘과거에 보신 무엇과 비슷해요’를 넘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