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들의 전쟁: 자동화와 승자독식 경제에 대응하는 사회 시스템을 찾아서

몇 년 전 『기계와의 경쟁』 책을 읽고 개인 차원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현재 경제 제도 하에서 승자독식 구조나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상실을 피할 수 없다면, 그에 걸맞게 제도 자체를 손보는 것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적어도 재교육이나 기계와의 협업을 통한 개인의 경쟁력 제고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는 해법이 아니다. 『보통 사람들의 전쟁』은 기술 발전으로 위기에 내몰린 사람들의 현실과 곧 마주할 미래를 보여주며, 제도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우선 “보통 사람”이 누구일까? 책에서도 얘기하듯이 (미국 기준이지만) 이런 책을 읽으며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은 이미 보통 사람이 아닐 공산이 크다. 재산, 소득, 학력 등을 기준으로 중앙값, 즉 줄을 세워서 가운데에 있는 사람을 찾아보면,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고, 교외에 살며, 시간당 약 17달러를 번다. 주식거래 경험도 없다. 바로 그가 보통 사람이다. (주식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최근 몇 년 동안의 활황에도 보통 사람들은 별로 혜택을 누리지 못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제는 익숙해진, 화물차 기사나 단순 업무 작업자들의 일자리는 몇 년 내 사라질 것이고, 자동화의 물결에 화이트칼라/사무직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1부를 채운다. 기술 때문에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주장에 대한 비판이 있는데, 저자의 반론은 다음과 같다.

  • 일자리가 사라진다는데 실업률은 낮다 -> 취업을 포기한 비경제활동인구가 많다. 인구 구조의 변화에 기인한 부분도 있지만, U-6(구직을 단념한 사람과 불완전고용 상태에 있는 사람까지 실업자에 포함한 실업률)은 높다.
  • 기술 혁신이라는데 생산성은 향상되지 않았다 -> 자율자동차 기술처럼 아직 적용되지 않았지만 현실화되는 순간 엄청난 충격이 발생할 미래를 고려해야 한다. 또, 현재는 경제가 활황이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자동화를 도입하지 않고 있지만 경기가 꺾이는 순간 기업은 비용과 효율에 현미경을 들이댈 것이다. 그리고 노동 과잉으로 인건비가 떨어져서 자동화의 유인을 낮추고 있을 수도 있다.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다.

일자리가 사라져가는 모습을 그린 1부가 끝나고 2부에서는 그 결과가 초래할 미래, 아니 이미 와 있는 현재의 모습이 그려진다. 미국의 쇠락한 제조업 도시와 테크 기업들이 몰려들어 번영하는 도시 이야기도 이제는 익숙하다. 이런 환경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선순환/악순환을 통해 고착화될 가능성이 크다. 어디에서 태어났는지에 따라 그 아이의 미래 소득과 잠재력이 달라진다고 하면 기우일까? 책에서는 가난이나 결핍이 실제로 그 사람의 생각이나 역량 발휘에 영향을 끼친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성공한 이른바 엘리트 그룹이라고 마냥 행복한 것은 아니다. 치열한 경쟁 상황에 힘들어하는 것은 그들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더 불안감에 시달린다. 그렇게 모두가 저마다의 삶과 씨름하는 동안 사회는 점점 분리되고 있다.

만약 그대로 둔다면 사회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극단적으로 양분될 것이다. 몇 되지 않는 대도시에는 소수의 부유한 사람과 그들의 머리를 깎아주거나 그들의 아이를 돌보는 사람들이 살 것이다. 화물차도 서지 않고 지나가는 전국 각지의 퇴락한 마을에는 엄청난 수의 일자리를 잃은 궁핍한 사람들이 우글거릴 것이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폭력 혁명이 일어날 것으로 전망하는 친구들도 있다., 221p

암울한 분위기는 충분히 조성되었고, 이제 해결책을 내놓을 때가 되었다. 바로 3부의 주제다. 첫 번째이자 핵심적인 제안은 역시 기본 소득이다. 자유 배당, 보편적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 UBI)이라고도 부르는데, 미국 기준으로 18-64세 전 국민에게 1년에 1만2000달러씩을 지급하자는 것이다.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절대 빈곤 상황에 놓인 사람은 없어지겠지만, 풍족한 삶을 살기에는 부족할 금액이다. 그런데 저자의 재원 마련책을 보고 놀랐다. 부가가치세? 아니.. 미국에는 부가가치세가 없었단 말인가?

전 세계 193개국 중 160개국이 이미 부가가치세VAT나 상품용역세를 부과하고 있다. 선진국 중 미국만 유일하게 VAT가 없다. 유럽의 부가가치세율은 평균 20퍼센트다. VAT는 잘 다듬어져 있고 효율성도 입증되었다., 241p

그렇다고 한다. 이어서 저자는 기본소득에 반대하는 주장을 나열하며, 과거와 현재의 실제 실험 사례를 통해 반박한다. 개인적으로는 아래의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

결핍을 연구한 학자들에 따르면 의사결정 능력을 향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정신적 여유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한다. 사람이 완벽한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 하지만 자신의 기본적 수요가 충족되어 정신적 여유가 생긴다면, 하루에도 수백만 명이 지금보다 훨씬 나은 판단을 하게 될 것이다., 258p

기본 소득 외에는 또 어떤 제안이 있을까? 디지털 사회 신용이라는 아이디어를 도입하자고 하는데, 타임뱅킹처럼 사람들이 서로 돕고, 도운 시간을 일종의 화폐처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이다. 기본 소득이 절대적인 빈곤을 해결한다면, 디지털 사회 신용은 사람들의 소속감과 유대감을 높여 공동체를 복원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그외에도 공직자가 처한 현실적인 딜레마를 지적한 부분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왜 관련 당국이 기업을 제대로 규제하지 못하는가 의문이 생길 때가 있는데, 담당자 입장에서는 임기가 끝난 뒤 별 볼 일 없는 신세로 전락할 수 있고, 그 후에는 규제 대상이었던 민간 기업이 자신의 고용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인간이 자본을 이기려면 주 정부가 다른 무엇보다도 공공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퇴임 후 아무것도 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어떤 세력의 눈 밖에 나도 꿈쩍하지 않는 지도층을 만들어야 한다.

상층부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선 대통령의 급여를 현재의 연간 40만 달러에서 400만 달러로 올린 후 세금을 면제하고 거기에 추가로 사회 신용 1000만 포인트를 지급하는 것이다. 단, 조건을 하나 붙인다. 퇴임 후 개인적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강연료를 받거나 이사직을 수락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의 이익을 고려할 필요가 전혀 없게 될 것이다. 장관과 각종 규제기관의 수장에게도 같은 조처를 취해야 한다., 285p (우리 사회에서도 국회의원 숫자나 공무원 연봉 같은 문제가 이슈가 될 때가 있는데, 분노하는 심정은 이해하지만 사회에 바람직한 방향이 어디인지는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저자가 구사하는 정치인의 언어를 보면서 짐작할 수 있듯이, 앤드류 양은 미국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앤드류 양: 아시아계 미국 대통령이 탄생할 수 있을까? - BBC News 코리아

이 책을 읽으며, 대다수의 사람이 기술 발전과 혁신을 반가워할 수 있도록 사회 시스템을 개선해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었다.

노란 형광펜

  • 승자독식 경제가 이런 빌미를 제공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경제적 가치가 인간의 시간과 노동에서 점점 멀어져간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보다는 짐짓 모른 체하고 1970년대의 방식을 계속 유지해왔다. 우리는 부채와 저금리에 의지하고 미래를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루는 방법으로 몇십 년 동안 이런 눈가림을 이어올 수 있었다. 그런데 기술이 정말로 비약적으로 발전해 우리의 노동을 무가치하게 만들기 시작하자 우리가 외면했던 현실이 대가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42 - 43p
  • 인간은 일을 싫어하면서도 일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중략) 오스카 와일드는 “일은 그보다 나은 것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의 도피처다”라는 말을 했다. 유감스럽게도 이 말은 우리 대부분에게 해당하는 말인 것 같다. 우리가 극복해야 할 과제는 일이 인간을 필요로 하는 것보다 인간이 일을 더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다., 109p
  • 엄밀히 말하면 혁신가가 자기가 하는 일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미리 생각할 수는 없다. 이들이 할 일은 가능한 한 비용 효율적인 혁신적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공급하는 것이다. 그것 자체만으로도 어려운 일이다. 사회에 대한 책임은 ‘우리’의 일이다. 즉, 우리 정부와 지도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144p
  • SAT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똑똑한 학생을 골라내 전쟁에 내보내지 않는 방편으로 쓰이며 명성을 얻었던 시험이다. 이제는 매해가 전시가 되어버렸다., 149p
  • 자가용 제트기나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1년에 1000만 달러를 쓰는, 헤지펀드를 운용하는 억만장자라면 VAT로 100만 달러를 내고 1만2000달러를 받을 것이다. 2500달러를 쓰는 싱글맘도 1만2000달러를 받을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 자식도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매월 1000달러를 받을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푸근해질 것이다., 24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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