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의자 선언: 어느 법률가의 따뜻한 시선
제목에서 느껴지는 어떤 차가운 거리감은 책 초반 몇 장을 지나면서부터 사라진다. 이후에는 마음이 따뜻할 것 같은 법률가가 들려주는 자기 경험담, 크고작은 사회 이슈에 대한 생각들이 남아 있다. 판사가 조용히 운영하는 블로그를 들여다보는 느낌이랄까. 중간에 나오는 에피소드들을 읽으면서는 가슴이 아팠다가, 코끝이 찡해지는가 하면, 희망의 이유를 발견하기도 했다. 세상에는 유명세를 타지 않아서 그렇지 여전히 좋은 사람들이 많고,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위로와 격려가 된다.
개인주의는 책에서 열심히 얘기하니까 넘어가고, 다음으로 인상에 남는 건 저자의 현실주의 혹은 실용주의적인 태도다. 나에게도 남에게도 희생을 강요하지 않고, 지금 내 자리에서 주어진 영향력을 발휘해 주변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일, 판사에게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저자가 조정위원회를 조직한 일화를 보면, 적임자를 찾아내 기회를 주고 데이터를 활용해서 성과를 높인 뒤 마케팅으로 기존 조직 내에 안착시킨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누구나 시도하고 있는, 또 시도해 볼만한 일이 아닌가.
그렇게 한 번 만들어진 변화는 주변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또 다른 좋은 변화의 토대가 되어줄 것이다. 거창하지는 않더라도 개인의 노력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고, 또한 개인주의자로서 사회적인 책무를 다 하는 길도 여기에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란 형광펜
왜 개인주의인가. 이 복잡하고 급변하는 다층적 갈등구조의 현대 사회에서는 특정 집단이 당신을 영원히 보호해주지 않는다. 다양한 이해관계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전략적으로 연대하고, 타협해야 한다. 그 주체는 바로 당신, 개인이다. 개인이 먼저 주체로 서야 타인과의 경계를 인식하여 이를 존중할 수 있고, 책임질 한계가 명확해지며, 집단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에게 최선인 전략을 사고할 수 있다., 25p
무엇보다 서구 민주주의는 인간성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한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인간의 이기심을 기본 전제로 하고, 권력자를 철저히 불신해 권력을 분리하여 상호 견제하도록 하는 사고방식 말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근간을 이루는 민법, 상법, 소송법을 공부하면 할수록 인간에 대한 불신에 기초해 정교하게 상호 견제가 가능하도록 만든 부분들, 애초에 인간 세상에서 최선은 성취하기 힘들다 보고 이해 당사자들의 투쟁을 통해 적정선에서 타협하도록 한 냉정함을 느낄 수 있었다., 102p
심리학이든 다른 어떤 학문이든 결국 인간의 여러 특성 중 범주화할 수 있는 보편성을 추출해서 보여준다. 문학은 그보다 훨씬 풍부하게 인간의 개별성, 예외성, 비합리성을 체험하게 해준다., 154p
우리 하나하나는 이 험한 세상에서 자기 아이를 지킬 수 있을 만큼 강하지 못하다. 우리는 서로의 아이를 지켜주어야 한다.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279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