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릭 스튜디오: 주식 투자의 계량적인 검증, 그리고 알고리즘
주식 시장은 넓다. 한쪽에서는 금융수학자들이 만든 알고리즘이 자동으로 주식을 매매하지만, 여전히 TV 채널을 돌리다 보면 주식전문가가 한 자리 잡고 앉아서 종목을 분석하고 있다. 또 한편에는 주가에는 이미 모든 정보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시장 평균 이상의 수익을 꾸준히 얻을 수는 없다는 효율적 시장 가설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있다. 도대체 누구 말이 맞는 걸까?
이 모든 주장은 숫자로 검증할 수 있다는 게 『문병로 교수의 메트릭 스튜디오』의 메시지이다. 2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할애해서 저자는 주식 시장에서 가격을 평가/예측하는 데 유용하다고 알려진 방법을 평가한다. 3장 “재무제표”에서는 PER, PBR, 현금흐름, 영업이익 등의 지표와 투자 수익률의 관계를 실제 한국 시장의 데이터로 살펴보고, 4장 “패턴은 정말 존재하는가?”에서는 증권TV에서 자주 들리는 이평선, 골든 크로스 뭐 이런 것들이 진짜로 예측에 도움이 되는 의미있는 패턴인지도 확인한다. 주가 예측이나 투자 지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이 두 장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5장 “변동성 다스리기”가 제일 흥미로웠는데, 저자는 작정하고 효율적 시장 가설 학파를 비판한다. 시장 가격에 정보가 기반영되어 있다면 어떤 종목을 사더라도 평균 수익률이 같아야 할 텐데, PER 낮은 종목에 투자했을 때 이론이 예측한 것보다 초과 수익이 발생한다는 실험적 증거들이 매섭다. 또한 펀드의 베타가 실제 수익률과는 잘 맞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하기도 한다.
켈리 베팅(켈리 공식)은 이 책에서 처음 봤는데, 한 번의 시행에서 돈을 딸 확률과 그때의 기대수익을 알고 있을 때 장기적인 수익을 최대화하는 전략이다. 자세한 설명은 여기에도 잘 되어 있다.
분명히 유용하고 배울거리가 많은 책이지만, 읽다 보면 궁금증이 생긴다. 주식 시장의 속설을 현실 데이터로 검증하는 것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본래 전공인 최적화 알고리즘을 적용해서 실제로 높은 수익을 거두었다고 책 곳곳에서 자랑하는 저자는 왜 이 책을 쓴 것일까?
건강한 투자를 위한 기본적인 지식들을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13p
너무 모범적인 답변이라 재미없지만, 이런 분야의 글을 읽을 때면 반드시 던져봐야 할 질문이라서 한 번 적어봤다.
효율적 시장 가설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이며, 알고리즘 투자에는 아직 기회가 남아 있다는 저자의 주장이 기억에 남는다. (똑똑한 거래를 하는 알고리즘이 늘어나고 주식 시장에서 호구가 사라지면 결국 효율적 시장에 가까워지는 건 아아러니하지만, 그건 불가능하거나 적어도 먼 미래의 일이라고)
노란 형광펜
- 구자라티의 기초 계량 경제학에 다음과 같은 표현이 있다. “어떠한 과학적 연구에서도 일정한 가정을 세우기 마련인데 이는 그 가정이 (중략) 현실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연구 내용을 단계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중략) 경제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중략) 완전 경쟁 모형을 배우게 되는데, 이는 완전 경쟁 모형에서 유도된 함의가 불완전 경제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완전 경쟁 모형이 꼭 현실적이기 때문은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효율적 시장 가설은 비효율적인 실제 시장을 이해하기 위해서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이 학파가 시장이 실제로 효율적이라고 주장한 것이 문제다., 425p
- 전문적으로 표현하면 무수한 알고리즘들이 다차원 공간에서 자신을 발견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들 중 아주 일부가 발견되어 주인을 만난다. 눈에 잘 띄는 곳에 자리하고 있는 알고리즘은 많은 주인들을 만나는 만큼 기대 수익은 줄어든다. 발견하기는 어렵지만 겹겹이 구부러진 다차원 지형의 아주 높은 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알고리즘들이 있다. 그런 것을 찾는 것이 최적화 전문가들이 하는 일이다., 456 – 457p (내가 만약 그런 알고리즘을 하나 찾으면, 그 꿀단지는 산 속 깊은 곳에 묻어놓고 신선놀음하면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