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탄력성: 유쾌하게 살아야 하는 과학적 이유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는 교수답다”
책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때문이 아니다. 흥미를 자아내며 관심을 끌어올리는 솜씨, 비유를 통해 쉽고 와닿게 설명하는 능력, 이를 통해 자연스레 설득하는 기술에 저절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자는 청소년기에 있는 자기 아들과 딸에게 들려준다는 생각으로 책을 썼다 하는데, 그래서인지 자상한 학자 아저씨가 차분하고도 설득력있게 삶의 기술을 조언해주는 느낌이 든다.
사전을 찾아보면 탄성, 복원력이라고 나오는 Resilience 이 책의 제목인 회복탄력성이다. 고난과 역경에 굴하지 않고, 불우한 환경을 극복한 사람들을 연구해보니 공통적으로 발견된 요소가 바로 이 회복탄력성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게 무엇인지, 어떤 특성이 있는지, 어떻게 계발할 수 있는지가 이 책의 주된 내용을 이룬다. 여기까지만 봐서는 여느 자기계발서와 다르지 않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행복의 기본 수준을 높이려면 과학적으로 입증된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그럴듯한 미사여구와 근거도 없이 잠언을 늘어 놓은 자기계발서는 잠시 내려놓고, 수많은 심리학자들과 과학자들이 실증적인 연구 결과를 통해 밝혀놓은 검증된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231p
이 책의 첫 번째 장점은 기본적으로 과학적 근거가 있는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다. 특히 뇌과학 덕분에 이제는 사람을 연구할 때에도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나 인터뷰에만 의존하지 않고 뇌 속을 직접 관찰하거나 메커니즘을 추적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책에는 실수관련부적전위 분석(75p)이나 뇌의 거울신경 연구(179p) 같은 사례가 나오는데, 앞으로 심리학 앞에 인지나 신경 같은 단어가 붙으면 조금 더 관심을 기울여서 살펴봐야겠다.
꼭 뇌과학이 아니더라도 원래 심리학자들이 재미있는 실험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이 책에서도 신생아 833명의 삶을 추적했던 하와이 카이아이 섬의 종단연구 (무지막지하기도 하지;;), 졸업 앨범 사진 속의 미소를 가지고 27세 / 43세 / 52세가 되었을 때의 행복도를 비교한 연구, 카네만 교수의 대장내시경 실험, 긍정적 정서의 효과를 밝힌 사탕 한 봉지 실험, 교수 능력 평가 실험, 표정에 따른 미술 작품 선호도 실험 등이 소개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충격을 준 것은 해리 할로우의 연구였다.
그는 아기 원숭이를 어미로부터 떼어내어 혼자 기르면서 다양한 실험을 통해 애착과 본질과 애착의 결핍이 가져오는 다양한 결과를 연구했다. 태어나자마자 어미와 다른 새끼들로부터 격리돼 혼자 자란 원숭이는 충분한 영양분을 공급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뇌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했다. 특히 뇌가 스테로이드 호르몬 수용체를 충분히 발전시키지 못해 스트레스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197p
어미의 사랑을 못 받고 자란 암컷 원숭이가 스스로 어미가 되었을 때에는 자기 새끼를 어떻게 대할까? (중략) 어려서 격리된 채 양육된 암컷 원숭이는 성장한 후에도 수컷과의 교미를 완강히 거부했다. 할로우는 할 수 없이 암컷 원숭이를 묶어 놓은 채 수컷 원숭이로 하여금 ‘강간’하게 했다. 이러한 실험은 말할 것도 없이 동물애호가들의 심한 분노와 반발을 일으켰다. (중략) 결국 격리된 채 양육된 암컷 원숭이가 임신을 하여 새끼를 낳게 된 것이다. 놀랍게도 이들 원숭이는 어미의 역할을 전혀 수행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새끼를 학대하기까지 했다., 199 ~ 200p
이런 다양한 심리학 실험 소개와 새로운 지식의 발견이 이 책의 두 번째 장점이다.
세 번째는 『마음의 작동법』에서 다룬 자율성,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에서 제시한 행복에 대한 착각과 과대 평가, 또 유명한 다중지능 이론 등으로부터 회복탄력성과 관련된 엑기스만 뽑아낸 뒤 잘 조합하여 알기 쉽게 설명한다는 점이다. 회복탄력성은 크게 자기조절능력과 대인관계능력으로 구성되는데, 자기조절능력은 감정조절력(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기분을 불러일으켜서 유쾌하고 적극적인 상태가 되는 것), 충동억제력(자율적으로 자신의 충동, 그리고 고통을 이겨내는 것), 원인분석력(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객관적이고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대인관계능력의 요소는, 소통능력(자신을 효과적으로 잘 드러내기)과 공감능력(다른 사람의 마음을 공감하기), 자아확장력(다른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사회적으로 연결되는 능력)이다. 여기에, 회복탄력성을 높이기 위한 마음의 단련법을 나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점도 장점이다.
마무리
수능날 포털사이트 실시간 이슈검색어에서 수험생 자살이라는 키워드를 발견하고 마음이 무거워졌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회복탄력성이 인생과 행복의 정답은 아니겠으나, 행복의 기본 수준은 낮고 충동통제력만 비정상적으로 높은 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무시할 수 없는, 아니 무시해서는 안 될 요소임은 점점 분명해지는 것 같다.
노란 형광펜
- 소통 능력은 말만 그럴듯하게 잘하는 언어구사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소통능력의 기본은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맺고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인간적인 신뢰를 주지 않고서는 진정한 설득이나 리더쉽 발휘는 불가능하다.이러한 소통능력의 향상은 긍정적 정서의 함양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6p
- 경험자아와 기억자아가 별개의 존재라는 캐니만 교수의 발견은 사회과학 전반에 걸쳐서, 그리고 ‘인간이란 무엇이냐’ 하는 철학적 문제에 이르기까지,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의 전환을 요구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40p
- 삶의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힘의 원동력이 되는 이 속성을 에미 워너는 ‘회복탄력성’이라 불렀다. 에미 워너는 무엇이 아이들을 사회부적응자로 만드느냐는 질문을 버렸다. 대신 무엇이 역경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정상적으로 유지시켜주느냐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53~54p
- 자신의 실수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되,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회복탄력성이 높은 긍정적인 뇌의 특징이다., 79p
- 무의식적인 수준에 자동으로 내가 겪는 경험에 긍정적인 스토리텔링을 해주는 ‘기억하는 자아’가 필요한 것이다. 80p
- 우리 몸의 근육 중에서 표정을 만들어내는 얼굴 근육만이 뇌신경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85p
- 아론과 아론은 ‘자아확장이론’을 제안하면서 친밀한 관계란 ‘상대방을 나의 자아개념에 포함시키는 것’이라는 대담한 제안을 하고 이를 이론화했다., 19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