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피용 - 베르나르 베르베르
망가질 대로 망가진 지구를 떠나, 선별된 사람들만 이끌고, 빛을 에너지로 삼아, 우주 저 먼 곳에 있을 새로운 지구를 찾아 떠난다는 이야기. 베르베르의 다른 소설들처럼 특이하면서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재, 게다가 호흡이 짧고 이야기의 진행이 빨라서 후딱 읽을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떠올렸던 두 가지 생각
1. 남아서 바꿀 것인가, 포기하고 떠날 것인가?
예전부터 종종 고민하던 문제다. 소설 속에서처럼 거창하게 우주선을 만들어 지구를 떠날 수는 없지만, 누구나 현실에 대한 불만을 단번에 해결하는 방안으로 탈출을 꿈꾼다. 그곳으로 가도 여전히 새로운 불만이 생길 것임을 알면서도 그렇다. 소설 속 상황과는 조금 다르지만 만약 ‘현실을 스스로 바꾸는 것’과 ‘더 나은 환경을 찾아 떠나는 것’ 사이에서 고민한다면 나는 후자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하다못해 지금 이곳을 개선하는 것이 목표라 할지라도 현실의 벽에 부딪히며 삽질하기보다는 더 나은 곳에서 스스로를 갈고닦고 돌아오는 편이 더 효과적이라고 믿는다. 어느 곳에나 문제는 있고 또 구성원들의 불만도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같은 수준인 것은 아니다. 기왕이면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최고를 고르는 것이 스스로에게나 또 그 조직에나 도움이 될 것이다.
2. 개체에 대한 의존과 조직의 강인함에 대하여
지구에서 받아온 뉴스를 보며 인류를 비웃던 우주인들에게 있어 첫 범죄의 발생은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강제적인 규범과 경찰 및 행정 조직의 필요성을 주창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사실 우주선에 태울 (정치가, 군인, 종교인 등을 배제한) 우수한 사람을 선별한다고 할 때부터 충분히 예측됐던 일이다. 통제 없이도 모든 구성원이 알아서 잘하는 사회의 모습을 이상으로 꿈꿀 수는 있겠지만, 개인에게 더 많은 것을 의존할수록 그 사회의 면역력(또는 건강함이라고 할까?)은 약해지는 것이 현실이다. 죄수의 딜레마에서 드러나듯 사람들은 서로 협력하여 최상의 결과를 찾아내기보다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려고 애쓴다. 모든 사람이 알아서 잘해야만 지속되는 사회는 -말로는 멋질지 모르지만- 관리의 측면에서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허약한 공동체다. 내외적인 환경에 대한 강인함(Robustness)이 떨어지기 때문인데, 그런 관점에서 보면 지금 이 사회의 모습은 현재까지 인류가 찾아낸 최선의 체제일지도 모른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