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의 가격: 비용 대비 편익과 의사결정

제목에 나오는 ‘가격’이란 단어는 두 가지 개념을 연상시킨다. 정량화와 경제학. 그리고 여기에 ‘모든’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책의 주제가 대충 감이 잡힌다. 경제학의 개념인 가격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해보겠다는 것이다. 그 대상은 책의 목차에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사물 / 생명 / 행복 / 여성 / 노동 / 공짜 / 문화 / 신앙 / 미래가 바로 그것이다.

가격은 어떤 대상의 가치를 정량화한 값이다. 가치를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그것을 선택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얼마의 가격을 지불하는지를 보면 된다. 말장난 같지만, 여기서 비용 대비 편익 분석이 등장한다. 사람들은 특정 선택을 하기 위해서 투자해야 하는 비용과 그 선택이 돌려줄 효용을 비교한 뒤 효용이 비용을 초과할 때만 그 대안을 선택할 것이므로 사람들의 실제 행동으로부터 가치를 추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 아니냐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제 사람 생명의 가격을 결정할 준비가 된 것이다.

테러 희생자에게 보상금으로 얼마를 지불해야 할까? 매연물질 배출을 줄이기 위해서 얼마의 예산을 투입해야 할까? 이런 문제에 대해서 실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의사결정권자들에게는 생명의 가격을 산정한다는 것이 실용적이고 매력적인 관점일 것이다. 동시에 어떤 사람들에게는 윤리적인 분노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생명의 가치는 무한한 것이 아니었던가.

비용 대비 편익 분석은 어디에나 갖다댈 수 있다. 신앙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무엇을 돌려주는가. 왜 과학의 시대에도 종교가 힘을 잃기는 커녕 심지어 더 강화되기조차 하는가? 아니면, 미래의 후손에게 닥칠지 모르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가?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지금 가능한 성장 중에서 얼마나 포기해야 하는가? 책에서는 이런 문제들을 다룬다.

책 전반에 걸쳐 비용 편익 분석에 따른 선택이라는 기조가 흐르는 가운데, 저자가 깔고 있는 두 번째 관점이 있다. 세상을 변화시킨 원동력은 인류가 보유한 지식의 확장이나 윤리성의 증대가 아니라 각 시대의 경제적 토대라는 것이다. 노예 제도 같은 강제 노동이 줄어든 것은 사람들이 예전보다 윤리적이 되었거나 인권의 가치를 깨달아서라기보다는 “평균적으로 노동자들이 너무 저렴해서 굳이 노예를 사용할 필요가 없”(179p)기 때문이고, 그렇게 된 큰 이유는 과거보다 크게 성장한 경제와 글로벌화된 시장이다.

결혼 제도의 변화나 여성의 지위 향상도 근본적으로는 경제 상황의 변화에 따른 것이고, 행복도 경제 성장에 영향을 받는다.

미국 밖으로 눈을 돌려보면, 소득 증가가 거의 항상 행복도 증가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과거 25년간 소득이 높아진 52개국에서 실시된 설문 조사를 보면, 45개 나라에서 행복도가 증가했고, 7개 나라에서만 행복도가 감소했다. (중략) 이러한 데이터는 한 단계 올라설 때마다 원하는 목표도 또 다시 높아지기 때문에 행복이 제자리걸음을 한다는 전제와 모순된다. (중략) 우리가 옆 사람보다 소득이 더 높아지는 데에서 상대적인 행복감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지만, 또한 우리는 물질적 부가 가져다주는 삶의 질 상승으로 인해 행복감을 느낀다., 117p

물질적인 조건이 행복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내용인데, 우리는 흔히 무언가를 갖게 되면 그 가치를 평가절하 해버리곤 한다. ‘부자가 되어도, 더 부자인 사람과 비교하면서 여전히 불행하다. 돈에 집착할 필요없다’ 하는 게 다 비슷한 얘기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현상을 가격의 관점으로 설득력있게 설명한다.

물질적으로 좀 더 풍요로워지면 행복을 위한 방정식도 변화한다. 소득이 높아지면, 여가 시간의 가치는 높아지는 반면 돈으로 살 수 있는 물질적인 것들은 덜 중요해진다., 121p

즉, 궁핍할수록 절대적인 재산의 양이 중요하고, 이때는 돈이 많아지면 더 행복해진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살 만해지면 돈의 절대적인 액수가 행복에 끼치는 영향은 작아지고, 대신 주변 사람과의 상대적인 격차의 중요성이 커진다. 행복에 기여하는 요소는 무척 많이 있을 텐데, (재산, 여유시간, 성취감, 친밀감 등) 개인의 현재 상황(무엇을 얼마나 가졌나)에 따라서 그 요소의 양과 증감이 행복에 기여하는 가중치가 다를 것이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이런 가정에 기반해서 개인의 행복도를 예측하는 모델을 한 번 만들어보고 싶다.

저자는 이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로서 “가격”으로 상징되는 경제학적인 정량화와 비용 편익 분석을 소개한다. 자연과학의 렌즈로 세상을 들여다본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와는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이런 지적 즐거움만으로도 충분하지만 그외의 가치를 굳이 찾는다면, 나는 어떠한 판단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논거를 제공한다는 점을 꼽겠다. 가령, 우리는 왜 선거에서 비밀 투표를 해야 하는가? “경제학적인 이유”는 바로 유권자를 직접 매수하는 행위를 없애주기 때문이다. (240p) 그럼 월스트리트의 은행가들의 급료를 제한해야 하는가? 저자의 답과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2008년 말 투자 은행 리먼 브라더스의 붕괴로 전 세계 금융 시장이 침체된 이래로 은행가들은 그들의 급료를 제한하려는 규제에 끈질기게 반대해 왔다. 금융 활동을 축소할 경우 최고 중의 최고를 고용하기가 힘들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중략) 그러나 이것은 필경 좋은 일일 것이다. 1970년에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남학생들 가운데 15년 후에 금융계에 종사하는 사람은 5퍼센트에 불과했다. 그러나 1990년 졸업생들 가운데 이 비율은 15퍼센트였다. (중략) 우리의 현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자원의 잘못된 배분처럼 보인다. 나머지 경제를 위해서 은행가들의 소득은 줄어들어야 마땅하다., 200p

노란 형광펜

  • 임금을 조종하는 요인은 두 가지이다. 생산성(해당 일이 고용주에게 얼마나 가치 있는가)과 해당 기술을 가진 노동자들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그것이다., 180p
  • 가장 부패한 국가는 그 나라 유권자들의 가격이 가장 낮은 국가이다. 특정 표의 가격은 보통 투표자가 버는 수입의 함수이다., 23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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