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위원회의 의사결정 방식
요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의 강연과 발언을 엮은 『발견하는 즐거움』을 읽고 있다. 그가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하던 당시 로스앨러모스에서 겪은 일화가 인상적이서 옮겨본다.
나는 우라늄 분리 과정에 관한 이론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위원회에 참석하곤 했는데, 그들이 나에게 질문을 한 다음 다 같이 토론을 했어요. 한 사람이 어떤 점을 지적하면, 예를 들어 콤프턴(미국의 물리학자. X선이 산란될 때 파장이 변하는 현상을 발견. 이것을 콤프턴 산란이라고 부른다. 1927년 노벨상 수상)이 다른 견해를 설명합니다. 그의 말은 완벽하게 옳았고, 올바른 생각이었어요.
“이건 이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말했어요. 그러자 다른 사람이 나서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어요.
“그럴 가능성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고려해야 할 다른 가능성도 있습니다.”
나는 펄쩍 뛰었습니다! 말도 안 되니까요. 그가, 콤프턴이, 했던 말을 다시 해야 한다! 다시 말해야 해! 하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한 바퀴 빙 돌면서 모두 한마디씩 합니다. 그러면서 서로 엇갈리는 의견을 내놓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의장인 톨먼이 말합니다.
“여러분의 의견을 잘 들었습니다. 내가 보기엔, 콤프턴의 주장이 최고올시다. 이제 다른 얘기를 해봅시다.”
나는 이런 모습을 보고 크게 감명을 받았습니다. 위원들이 모두 다 한 가지씩 생각을 제시하는데, 저마다 새로운 면을 가지고 있고,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의 의견을 기억하고 있다가, 마지막에 어떤 견해가 최고인지 모든 것을 단숨에 정리해서 결정하는데, 같은 말을 두 번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알겠습니까? 거기에서 나는 엄청난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진정 위대한 사람들이었어요. from 발견하는 즐거움, 76 ~ 77p
해결할 문제와 관련된 모든 사람이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 내에서 의견을 밝히고, 권위를 가진 최종 의사결정권자가 이를 공정하게 비교 검토하여 최선의 선택을 내린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 누군가에게 반론을 하고 그에 대해 재반론하는 과정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토론에 의한 합의보다는 이런 결정 구조가 현실적이고 효과적이라고 본다.
이런 방식이 작동하려면 참석자의 다른 참석자, 그중에서도 특히 위원장에 대한 신뢰가 필수적이다. ‘내가 보기엔 아니지만, 저 사람이 저렇게 말하고 결정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라는 믿음 말이다. 그래서 회의에 참석할 사람을 정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 요건에는 전문성 같은 요소 외에도 정말로 그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의지가 있느냐 하는 게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자신을 돋보이게 하거나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 혹은 판을 엎어버리려는 다른 목적이 있는 사람이 끼는 순간, 사람들의 피로도는 급증하고 생산성은 급감한다.
그렇다고 그 요건을 너무 보수적으로 갖다대면 위원회는 폐쇄적이 되고, 결국 고인물이 되어 썪는다. 참 어려운 문제다. 그래도 위원회의 사람들이 -위대까지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똑똑하고 또 동기부여되어 있다면 걸러낼 건 걸러내고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면서 잘 해나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