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 앗, 이건 논문 읽는법이잖아!
요즘 들어서 난독증이 의심되는 나에게 스스로 선물한 책이다. 책을 읽는 데에는 흥미 유발이나 정보 수집 등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이 책은 그중에서도 읽기를 통해 이해력을 증진하고 싶은 사람을 위한 길잡이를 자처한다. 저자는 책 읽기 수준을 4가지로 구분하는데, 가장 중점적으로 다루는 것은 3수준의 ‘분석하며 읽기’다. 글의 내용을 잘 이해하기 위한 8개의 원칙과 각각의 실천 지침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 책을 종류와 주제에 따라 분류한다.
- 책이 전체적으로 무엇을 다루고 있는지 최대한 간결하게 이야기한다.
- 주요 부분을 순서와 연관성에 따라 열거하고 전체적인 윤곽을 그린다.
- 저자가 풀어나가려는 문제를 분명하게 파악한다.
- 중요한 키워드를 저자가 어떤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지 파악한다.
- 가장 중요한 문장을 통해 저자가 제시하는 주요 명제를 파악한다.
- 저자의 논증을 문장과의 연관 속에서 구성하거나 찾아낸다.
- 저자가 풀어낸 문제와 그렇지 못한 문제를 구분하고, 풀지 못한 문제를 저자도 알고 있는지 파악한다.
이렇게 책을 끝까지 읽고 내용을 이해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독자에게는 아직 비평의 “의무”가 남아 있다. 책 저자의 의견에 찬성하는 것 또한 비평의 일종이며, 무조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아니라 숙고 끝에 내려야 하는 결정이다. 저자 모티머 애들러는 거기서 더 나아가 책 저자의 주장에 반론할 수 없으면 동의하는 것이 의무라고 말한다.
앞에서 말한 세 가지 반론을 제기할 만한 근거가 없다면 책을 이해한 이상 저자에게 동의할 의무가 있다는 점이다. (중략) “전제된 이야기나, 논리를 펴나가는 과정에서 잘못된 내용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결론에 동의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중략) 이는 반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감정이나 편견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완벽한 책은 없으며, 우리가 읽는 책 대부분에는 허점이 있을 것이므로 섣불리 찬성하기보다는 이 책에서 제시하는 네 가지 기준에 따라 내용을 비판적으로 분석해보는 것이 좋겠다.
- 아는 것이 부족하다.
- 잘못 알고 있다.
- 논리적이지 않아 설득력이 부족하다.
- 완전하지 않으니 좀더 분석해보라.
내 생각에는 1번과 4번 사이의 경계가 모호한 지점이 있는 것 같은데, 역시 자세한 설명은 책을 참고.
논문 읽는 법
책을 읽다 보니 저자가 설명하는 분석적 읽기 원칙을 전공 논문을 갓 읽기 시작한 대학원생에게 가르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 읽을 논문이 무엇에 대한 것인지, 어떤 성격인지(주장/조사/설명 등) 분류하고,
- 저자가 어떤 메시지를 어떤 순서와 구조로 제시하는지 살펴서 무슨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지 파악하고,
- 본문을 읽을 때는 용어에 주의를 기울여서 의미를 이해하고, 명제들 사이의 논증을 따라서 문제가 어떻게/얼마나 해결되었는지 꼼꼼하게 살핀 뒤,
- 지금까지의 이해를 바탕으로 논문을 비판해서 찬성/반대/판단보류의 입장을 정하고, 그 연구의 한계를 발견해서
- 자신의 연구에 참고한다.
독서의 네 번째 수준인 ‘통합적인 읽기’는 관련 연구 정리를 위한 문헌 조사와도 일맥상통한다. 나는 언제부턴가 이 책에서 ‘책’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논문’으로 바꿔서 읽었는데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었다. 독서법에 관한 책이고, 논문은 책의 한 종류니까 당연한 얘기겠지만. 영어 해석이 문제가 아닌데도 논문을 읽고 소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가 있다면 이 책을 강력추천한다.
그 외에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이나 토론을 잘하고 싶은 사람도 얻을 것이 많다. 책을 잘 읽는 원칙이 존재한다는 것은 좋은 글의 특징이 있다는 뜻이며, 따라서 글을 잘 쓰고 싶다면 그 원칙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 또, 이 책은 저자에게 적절한 비판을 하는 방법과 ‘지적 에티켓’에 대해서도 설명하는데, 이는 독서뿐 아니라 대화와 토론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원칙이다.
결국은 실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제시한 원칙을 실제 책을 읽을 때 적용하느냐는 것이다. 그저 글자만 따라가면서 이해가 되는 만큼만 이해하는 습관을 그대로 두면 아무리 좋은 원칙과 지침도 소용이 없다. 저자는 독서를 스키 배우는 것에 비유하면서, 개별 기술을 집중적으로 연습해야 그 각각을 더 잘하게 되는 동시에 한꺼번에 모든 작업을 잘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강사가 간단하다며 해보이는 동작조차 배우는 사람은 제대로 따라하지 못해서 도리어 모욕을 당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중략) 이런 것들을 일일이 기억하면서 스키를 탈 수 있을까? (중략) 따로 떨어진 동작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지 않고도 모든 동작을 잘할 수 있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하지만 “개별적인 동작들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기 위해서는, 일단 하나씩 따로 배워야 한다.” 그래야 그 동작들을 하나로 연결시켜 스키를 잘 타게 되는 것이다.
즉, 의식적으로 개별 원칙을 연습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시나브로 모든 원칙을 따르면서도 자연스럽게 책을 읽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과연 나도 할 수 있을까?’ 의심하는 독자에게 저자는 용기를 준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당신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이다. (중략) 익숙해지면 저절로 훨씬 더 책을 잘 읽을 수 있다.
노란 형광펜
- “처음부터 끝까지 무조건 읽어내려 가라.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뭔가를 찾아보려고 하거나 곰곰이 생각해보려고 하지 말고!” (독서의 2수준 ‘살펴보기’에 대한 설명 중), 47p
- 기초적인 읽기의 수준을 넘어서면 올바른 순서를 따라 올바른 질문을 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 하나의 기술이다., 55p
- 모든 비평은 같은 의견, 다른 의견, 또는 판단을 보류하는 세 가지 입장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비평하는 것이 늘 다른 의견을 갖는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는 일은 없어야 하며 저자의 의견에 찬성하는 것도 반대하는 것만큼이나 어렵게 비평하는 것이다., 156p
- 많은 사람들이 의견이 다르면 가르치거나 배우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그저 견해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 데서 그치고 만다., 162p
- 어떤 사람들은 “찬성”에도 두 가지 의미가 있다는 것을 미처 구분하지 못하는 잘못을 한다. 한 마디로, 서로를 이해한다면 의견도 같아야만 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의견이 서로 다른 이유가 모두 오해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16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