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모리 가즈오의 회계경영을 읽고
회계에 대한 책이라서 지루할 줄 알았는데, 저자가 경영자로서 회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인상적이고, 그가 세운 회계 원칙을 나의 분야에 대입해서 생각할 거리가 있었다.
A. 모르긴 몰라도 회계학의 내부를 들여보면 기술적인 복잡함이 상당할 것 같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디테일에 압도되지 않고 경영에 필요한 도구로서의 회계라는 관점으로 중심을 잡고 있다.
항상 그 본질을 생각했기 때문에 내가 예상한 것과 실제 결산 숫자가 다를 때마다, 경리 담당자를 불러 자세하게 설명하게 했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회계나 세무의 교과서가 아니라 회계의 본질과 그 움직임의 원리였는데 경리 담당자로부터는 가끔 내가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할 때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회계적으로는 이렇게 된다.”는 말을 들어도 “그건 왜”라며,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질문을 반복했다., 21p
통계학이 떠올랐다. 학교에서 의무로 수강해야 했을 때는 따분하기 그지없는 과목이었는데, 나중에 보니 사회에서 업무에서 생긴 질문에 대해 이미 체계적인 답변을 준비해놓고 있었다. 통계학 교과서에 나오는 엄밀한 증명과 수식에 깔려있는 의미를 이해하고 나면 현실 속에서 고민하는 문제에 깔끔하고 신뢰할 수 있는 답변을 돌려줄 때가 많았다. 만약 그런 도구를 몰랐다면 지저분한 예외처리나 꼼수를 동원해야 했을 것이다. 저자는 회사의 경리 담당자를 불러 물었다고 하는데, 나는 팀의 동료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
B. 지표라고 하면 뭔가 거창하지만, 지표는 어디에나 있다. 매일 운동하고 나서 재는 몸무게도 하나의 지표이고, 블로그 운영자에게는 방문자수, 방문 후 체류시간, 재방문율이 관심 있는 지표일 것이다. 제3자에게는 그저 그런 숫자의 하나일지 몰라도 그 의미를 아는 사람에게는 그 숫자 하나에 담긴 스토리가 보인다. 땀의 결실이자 아픈 실수이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보여주는 계기판이다. 나도 회사에서 맡은 서비스의 지표에 주의를 기울이며, 뭔가를 개선하고 나면 지표가 어떻게 바뀌는지 궁금해 잠을 설치기도 한다. 경영자에게는 회계장부가 바로 그런 지표겠구나 싶었다.
C. 책의 2부에서는 저자가 만든 회계학의 실천원칙들을 제안한다. 그중에서 특히 “일대일 대응의 원칙”과 “이중 체크의 원칙”을 읽으며 개발자로서 코드를 작성하고 관리하는 일을 떠올렸다. “일대일 대응의 원칙”은 거래와 전표를 반드시 일치시키고 누락이 없도록 하라는 것인데, 이슈-코드-문서화에도 적용이 필요한 원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중 체크의 원칙”은 사람의 마음을 바탕으로 경영한다라거나 사원을 죄인으로 만들지 않겠다는 배려라는 식으로 얘기하지만, 결국 사람의 선의에만 기대지 말고 2명 이상이 검증하는 시스템을 갖추라는 조언이다. 피어 리뷰를 거친 코드만 체크인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와 똑 닮았다.
D.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아메바 경영이라는 개념이다. 아메바는 독립된 사내 경영 책임 단위를 일컫는 용어인데, 각 아메바의 경영 성과에는 사외 출하 뿐만 아니라 사내 판매도 포함된다. 즉, 회사 내의 다른 조직에게 무언가를 제공할 때에도 시장가격에 따라 거래를 하고, 그걸 각 아메바의 매출과 비용으로 잡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무엇이 좋은가?
한 아메바의 ‘총 생산’이 전체 회사의 부가 가치에 얼마나 공헌했는지도 바로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사내를 대상으로 한 생산밖에 하지 않는 아메바에서도 그 ‘총 생산’이 회사 전체의 생산고에 공헌하고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으므로 회사에 기여한다는 일체감을 높일 수 있다., 147p
서비스 회사의 내부를 뜯어 보면 직접적으로 매출이 발생하는 조직이 있고, 필요한 일을 하지만 성과를 측정하기는 어려운 조직이 있다. 간접적인 매출 기여의 평가가 어려우므로 업무의 우선순위 조정이나 협업에서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는 지점이다. 이런 경우에 아메바 경영같은 개념을 도입하면 협업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감이 생겼다. 한편으로 몇 가지 부작용도 떠오르는데, 그에 대한 답은 저자의 다른 책인 『아메바 경영』에서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