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1: 작곡가들도 다 사람이었네
천고마비의 계절 맞이 문화/교양 함양 프로젝트 1탄.
지휘자 금난새에 대해서 내가 아는 거라곤 얼마 전에 “금난새 아들 이름”이 포탈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왔다는 것 정도다. 그의 이름이 큼지막히 박힌 『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1』을 읽고 난 지금도 그에 대한 지식은 별로 늘어나지 않았다. 그대신 클래식 음악 작곡가들에 대한 친밀도는 조금 높아진 것 같다. 다르게 말하면, 만만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음악의 아버지 브람스는 실제 자식도 40명이나 낳았다. 리스트는 여자를 조심하라는 아버지의 유언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여인과 풍문을 뿌리다 결국은 종교에 귀의해버렸다. 바그너 역시 꽤나 바람둥이였다는데, 심지어 제자의 아내를 빼앗기조차 했다. 이건 뭐… 그나저나 19세기 유럽의 클래식 음악가란 요즘의 아이돌 같은 존재였던가? 인기가 장난 없다.
그래도 모든 음악가들이 그런 인기를 즐길 정도로 외향적이지는 않았나 보다. 짝사랑하는 여인 곁에서 괴로워하느니 차라리 그녀를 보지 않겠다며 조국을 떠났다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비운의 피아니스트 쇼팽이 있었는가 하면, 차이코프스키는 소심한 성격 탓에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이와 결혼하는 걸 지켜만 보았고, 결국 다른 여자와 결혼했지만 이번에는 아내를 남겨놓고 먼 곳으로 도망쳐버렸다. … 갈수록 태산이다. 정상인이 안 보인다.
하지만, 근엄한 독일인 브람스라면 어떨까? 그에게도 주변에 여자가 구름처럼 몰리던 시기가 분명 있었을 거다.
어느 파티에 참석한 브람스는 많은 부인들이 주위에 몰려들자 귀찮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평소 잘 피우지도 않는 담배를 계속 피워댔습니다. (중략) “선생님, 여자들 앞에서 그렇게 담배를 피우시다니, 좀 너무하지 않습니까?” (중략) “천사들이 있는 곳에 구름이 없을 수 있겠소.”, 218 ~ 220p
이런 뻔뻔함을 가진 브람스지만 그의 가슴에도 불타는 사랑은 있었다. 스승이었던 슈만이 세상을 떠난 뒤 슈만의 아내 클라라에게 연정을 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기대하는 일은 끝내 벌어지지 않았다. 브람스답게 절제의 끈을 놓지 않았고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클라라와는 사모와 제자의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이런 그의 삶을 알고 난 후에 듣는 브람스 1번 교향곡의 느낌은 이전과 다를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의 효과다.
- 작곡가 은퇴 후 시작한 미식가 취미로는 성이 차지 않았는지 직접 요리사가 되어 요리책까지 낸 익살꾼 로시니의 오페라는 어떨까?
- “삶이 너무 풍족하고 편안한 탓이었는지 그의 작품에는 인간의 고뇌가 깊은 생각이 엿보이지 않는다.”는 평을 듣는 (정말 부러운) 멘델스존의 한여름밤의 꿈에는 정말 깊이가 부족할까?
- 프랑스 사교계의 아이돌 리스트가 초절기교연습곡을 치는 동안 오빠부대 그녀들은 어떤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궁금증이 마구 솟구치는 독자를 위해 저자는 친히 작곡가별로 추천곡을 하나씩 남겨놓았다. 근데 그러면 뭐하나, 들어볼 수가 없는걸.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 이런 종류의 책은 스마트폰이나 멀티미디어 기기용으로 따로 만들어야 한다. 책을 읽으면서 관련 곡을 바로바로 들어볼 수 있도록. 음악을 글로만 배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저자 서문에서부터 이 책은 청소년을 위한 클래식 입문서라며 독자층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아마도 중학생 정도? 그래서인지 글은 높임말로 쓰여 있고, 구성도 시대별로 서로 많이 다른 두 음악가를 대조함으로써 흥미를 높이려고 한 것이 눈에 띈다. 문제는 저자 금난새 씨의 문장 패턴이 너무 단조롭다는 거다. “~습니다. ~한 것입니다”는 정말로 끊임없이 반복된다. 이런 식이다.
- 결국 유럽 음악이 둘로 나누어지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많은 음악가들이 브람스 지지와 바그너 지지파로 나뉘게 된 것입니다., 225p
- 그러나 그의 행복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음악가로서 치명적인 질병, 귓병이 찾아온 것입니다., 118p
책을 읽는 동안은 문단마다 한 번씩 나오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는데, 다시 보니 그 정도는 아니네 :> 장이 끝날 때마다 “쉽게 풀어쓴 음악상식” 코너에서 어려운 음악 용어를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하는데, 그것만 보고 각 용어의 의미를 이해하기는 좀 부족한 듯하다. 단점은 이 정도.
일본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에서 보고 베토벤 교향곡 7번과 브람스 교향곡 1번을 좋아하게 됐는데, 이 책을 보고 나니까 더욱 좋아졌다. 브람스 얘기는 위에 썼고, 베토벤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도 간단히 옮긴다.
“백작님. 백작이라는 벼슬은 우연히 생긴 것이지만, 나는 제 힘으로 생겼습니다. 그런데 명령조로 연주를 강요하다니 매우 불쾌합니다. 백작은 앞으로도 수천 명이 나오겠지만, 베토벤은 단 한 명뿐입니다.”, 베토벤, 116p
클래식 음악을 듣기 시작하는 사람이나, 음악 자체에는 익숙하지만 작곡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이에게 권할 만한 책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책을 읽기 위해 꼭 청소년일 필요는 없다.